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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H 라호르

카라코람하이웨이(Karakoram Highway)

따라서…Lahore

 

국경에서 예약한 버스를 타고 라호르 시내로 이동 하는 길은 잘 정돈 되어

조금 전 인도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온갖 소음과 자동차 경적소리에 혼란한 인도와는 달리 자동차 경적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파키스탄의 첫 모습은 가로가 정돈되고, 쓰레기가 없는 거리의 깨끗한 이미지로 다가 왔다.

테러와 급진 이슬람에 대한 두려운 느낌과, 괜히 시내의 집들도 음산 할 듯한 생각은 내리쬐는 강력한 태양마저 덜 덥게 느껴진다.

라호르 시내 중심가의 숙소에 짐을 풀고 패스트 푸드로 점심을 대신하며, 라호르 시내 관광에 나섰다. 먼저 들린 곳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종교시설, 바드샤히 모스크 무굴시대 건축 된 이슬람 모스크- 황제의 모스크(Emperor's Mosque)라고도 한다.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로 이름난 무굴제국의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1673년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Aurangzeb)황제가 건축하였으며 이슬람아바드에 파이잘 모스크가 건립되기 전까지는 파키스탄 최대의 모스크였다. 건물 내부에 1만 명, 안뜰에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구조와 장식은 페르시아 양식인데, 붉은 사암의 벽과 흰 대리석 돔이 좌우대칭으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산백과)

모스크 인근에 위치한 라호르FORT 1566년 무굴제국 황제 아크바르가 기존의 진흙으로 지은 성채를 벽돌로 개축한 위에 수세기에 걸쳐 증축 되었다.

라호르는 무굴 제국의 요충지인 카슈미르, 카불, 물탄의 중간에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또한 무굴 제국이 인도를 첫 번째로 정벌한 장소여서 웅장하고 기능적인 성채를 지어 과시하기에는 적절하고 또 필요한 위치였다. 아크바르의 재건을 예로 삼은 후세의 황제들자한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 하라자 란지트 싱은 호화롭게 장식한 건물들을 새로이 추가하였다.

각각의 건축물은 정확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사적인 공간과 공공(행정)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 아그라 성채와도 유사하다. 왕실의 사적 구역은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코끼리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지만, 황제들이 공적인 구역을 이용할 때에는 아우랑제브 대제가 만든 웅장한 '알람기리 길'을 통해서 들어갔다. 무굴제국의 황제들이 다니는 문은 코끼리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가 되어야 했다.

샤 자한은 화려하고 정교한 건축그는 저 유명한 타지마할을 짓기도 했다을 선호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울의 방(쉬쉬 마할)'과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나울라카 파빌리온은 그의 화려한 스타일을 나타내는 또 다른 예이다. 샤 자한은 성채 안에 처음으로 무굴 모스크를 짓기도 했는데, 이 역시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 성채 안에서도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Lahore Fort]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라호르 포트의 중심 건물은 44개의 방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실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터키식 욕실, 작은 뜰에 연못을 만들고 그 속에 비친 달을 감상하며 밤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연회실, 잘 세공 된 다이아몬드같은 다면각 보석이 아치형 천정에 촘촘히 박혀있어 성냥불만 켜 들어도 온통 찬란해지는 별빛 방이 있는가 하면, 거울 궁전의 기둥과 벽면을 화려하게 수놓은 섬세한 문양은 상감기법으로, 이 지역 특산물인 루비· 가네트 등 보석을 박아 연결하였다. 전체 대리석 바닥 밑에는 자연 구배로 흘러가도록 한 수로가 있어, 한 여름 무더위도 자연 냉방이 되어 쾌적하게 지낼 수 있으며, 바람 또한 막힘 없이 맞보며 지나도록 설계되어, 자연스럽게 통풍이 되어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시원하다.

인도 타지마할 궁전17세기 한 여인은 이곳에서 한 남자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없는 호사를 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먼저 죽음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택을 얻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받은 쪽일까, 준 쪽일까.

왕과 왕비가 나란히 누어있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달빛을 받으면 더욱 황홀하게 빛난다. 특히 보름달 아래 자태는 볼수록 불가사의함을 느끼게 한다. 사진을 통해 보아도 생명력이 느껴진다.

반면 살아서 호사를 누린 라호르 포트는 유령의 요새가 되어버렸다. 거울궁전에 화려하게 상감된 보석들은 영국이 진출하면서 영국 군인들이 모두 파 가 버렸다. 곱게 보석만 파간 것이 아니라 거칠게 파 간 바람에 섬세한 문양까지 뭉개져 버렸다.

 

국기 하기식을 보기 위해 서둘러 인도 파키스탄의 Wahga Atari  Integrated Border Park 국경으로 향했다. 조용하기만 했던 국경이 시끌벅쩍.. 파키스탄의 스탠드에 비해 서너배 이상의 인도쪽 스탠드는 많은 관광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는 반면,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없는 파키스탄은 수백명의 관객이 빼곡히 스탠드에 앉아 파키스탄 잔대밧이라는 구호와 북으로 인도군중에 기싸움을 한다.

오후 4시반부터 시작한 국기 강하식은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절제된 행동을 반복하며, 마치 닭벼슬 같은 모자를 착용한 국경 수비대원들의 퍼포먼스로 한시간정도 의식을 행하였다.

종교적인 문제와 카슈미르 지역의 영토 분쟁으로 독립 후 세번의 국지전 그리고 핵무기개발등 양국의 분쟁은 지금도 진행형 이다. 

국기 강하식을 보고 라호르로 귀환.. 시내 중심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 하여 오랫만에 편안한 식사를 하였다.

 

 

인도와는 달리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지만 기타 소고기나 닭고기는 제한이 없다. 인도의 커리향료에 지친 나에게 파키스탄 음식은 제법 입맛에 맞았다.

인도의 음식은 거의 채식 위주이다. 햄버거에도 패티가 육류가 아닌 콩류이다.

인도 음식에 관한 우스개로.. 손님 초대를 위해 초정자는 게스트에게 채식주의자인지를 확인 하여 육류 및 채식을 준비 한다고 한다.

70% 이상이 채식주의자(Vegetarian)이라는 응답에 음식을 준비하게 되면 육류가 항상 부족 하다고 한다. 대답은 채식으로 하고 육류를 선호 하는 이율 배반적인 행동을 한다고 한다.

우리의 체면치레 같은 형식이 인도인에게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육식을 한다는 말은 카스트의 하위계급으로 인식하기 때문 인 것 같다.

라호르시내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마치고 라호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개관 시간이 삼십여분 남아 인근의 라호르 재래시장에 아침을 먹으로 나온 시민들과 어울려 빠야라는 보양식을 먹었다. 빠야는 우리


의 도가니탕과 비슷한 음식으로 양, 염소의 무릎부위를 삶아서 향신료를 첨가 함께 먹는다. 낯선 이방인이 아침식사시간 현지인의 식당에서 빠야를 먹는 모습이 신기 한 듯 많은 파키스탄 인들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환하게 웃어 준다.

간단히 현지 음식을 맛보고 라호르 박물관에 들어 갔다.


라호르 박물관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박물관으로 1894년에 조성되었다. 8개의 전시실에는 간다라의 불교미술과 인더스강 유역의 출토품,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 파키스탄 각지의 민속의상과 무굴제국의 예술품 등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품 중에서도 압권은 〈단식하는 불타상(Fasting Buddha)〉인데, 중앙 홀 왼쪽 끝의 간다라의 방으로 들어서면 왼쪽 유리진열장 중앙에 안치되어 있다. 높이 약 80cm의 이 좌상은 뼈와 가죽만 남고 혈관이 간신히 뼈에 붙어 있는 모습이다. [Lahore Museum] (두산백과)

라호르 박물관을 관람 하고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람아바드로 이동 했다.

1997년 대우건설이 시공한 고속도로로 지금도 잘 관리되어 가장 주요한 간선도로이다.

 평원의 지루한 풍광이 계속 된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못 미치지만 유명한 브랜드의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휴게소는 여행 중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충분하다.

던킨도너츠로 와 콜라 한잔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 하고 오후 이슬람아바드에 들어 섰다.

개발이 한참 진행 중인 듯 10차선이 됨직한 넓은 도로와 곳곳에 타워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이며 건축 자재를 양중 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80년대 강남개발 붐이 불던 시가지의 모습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