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관련

잊혀진 것 들을 찾아서

구름나그네59 2005. 9. 21. 17:20

부곡 하와이 초입 영산 IC..영산읍내의 만년교---석교로서 그림자와 어울어진 완벽한 원....

관룡사 입구 석장승--- 할아버지 석장승은 합죽이..할머니는 새침데기..ㅋㅋ

 

9월 10일 새벽에 한바탕 빗줄기가 휩쓸고 지나간다.

이른 아침 잣아드는 빗줄기..오늘 탐구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빌며 새벽6시 집을 나선다.

전화로 출발지 상황을 확인하니..막내가 아직 오지않아서 출발이 조금지체 되는 거 같아..

거의 8시가 다되어 서울을 벗어난다..

서울을 벗어나는 양재-기흥 구간을 지나자 차량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오전 햇살을 받고 있는 암각화를 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 일행은 준비해온 김밥 한줄기, 사과 1/4쪽으로 아침을 차안에서 해결하고

어느덧 고속도로 김천 IC를 벗어나 거창으로 국도를 달려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어간다..

거창 읍내를 지나 다시 88고속도로를 타고 고령에 내리니 벌써 점심때를 훌쩍 넘겨..

일단 암각화를 건너자는 의견에 대가야 고분군과 박물관으로 향했다..

 

특이한 고분군이다..일반적인 봉분들-특히 지배자들의 무덤은 평지에 양지바르게 자리한 것들만 봐 오다가 산 능선을 타고 형성되어 있는 고분군은 새로운 경험 이라고나 할까..

특히 30~40명 식솔을 거느린 순장묘는 문화적 정신적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장묘방식이다

 글로만 대하던 순장묘를 실체적으로 가깝게 느끼면서..종교적 내세관을 가진 현재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그 생각과 다름이 없었으리라 -물론 시각이 다른- 마음 한 구석에 뭔가 형언 할 수 없는 아픔이 전해 온다..

대가야 박물관의 많은 유물들은 화려 했던 가야 문명의 세계에 잠시 빠져 들게 했다..유려한 도자기의 곡선미..아름다운 금,은,금동 장식의 각종 장신구와 철기 제품들..그리고 현재의 디자인에 못지않은 허리띠의 버클 등..등..

그러나..이 모든 것이 패자의 슬픔에 오버랩 된다..

 

김해쪽 금관 가야의 지배층은 신라와의 융합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승리자로 되살아 났지만..끝까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했던 대가야는 어느날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만 발해의 그네들 처럼..봉긋한 봉분만 남기고..문화나..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역사는 승자의 전리품이다 란 말이 생각나게 하는 ..

 

4시로 예정된 고령기와 방문 일정으로 부지런히 가야시대를 섭렵하고 양전리 청동기 시대 암각화를 둘러보러 출발.

암각화를 덮고 있는 철구조물..그리고 탁본작업으로 인한 착색된 그림들..청동기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로 만족을 느껴야 겠다..모두 모여서 출석용 사진 한장을 찍고 한 10분정도 가니 고령 기와 공장이다..

 

사장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손수 공장 안 이곳 저곳을 안내 하며..좋은 말씀을 해 주신다..많은 애정을 가지고 소명감을 가지시고 3대째 이어 가며 가업을 이루어 가신다..각종 기와 제작 공정을 둘러 보고 새로이 전 자동화 설비를 갖춘 2공장 까지 둘러 보니 벌써 2시간.을 보낸다..

2공장은 양식 기와공정까지 담당 하시는 상무께서 설명해주시고 한식기와 생산 공정은 70시간,양식기와는 1/5 정도..최단 9시간 정도 면 생산 가능하다고 한다..

갖종 자료를 보며 질문, 양식기와로 시공되어 있는 단독 주택들은 아스팔트 슁글로 지어진 집보다 한결 운치가 더하고..아름답다..(한식기와 \150,000/평당)..

 

기와공장을 둘러 보고 고령기와 사장님의 배려로 현풍 할매 곰탕집에서 수육에 소주 각 1병씩 하고..숙소인 부곡 일성 콘도로 간 시각은 저녁 9시경

우리 일행들은 신문지 식탁에 둘러 앉아 폭탄주 1배,,재 1배 후 간략한 소감 한마디씩..그 후..그룹별로 열띤 대화의 시간을 갖고

11시경 지하 노래방으로 이동 밤 늦도록 여흥을 즐겼다..

아침 7시 비몽 사몽 기상과 동시에 조식 후..바쁜 일정으로 영산 읍내의 홍예교를 둘러보는것으로 일정을 시작 했다..많은 공덕비  하나 하나에 의미를 새기고, 새로이 조성된 공간의 부조화에 대한 설명..바쁘게 화왕산 관룡사로 이동

관룡사에서는 30여분 산길을 걸어 석장승 아래서 한장 씩 사진도 찍고

관룡사 경내의 1칸 짜리 약사전에 대하여 모두 모여 집중탐구 하고 있는데..주인 스님의 못마땅한 말에..모두 어안이 벙벙,.. 특히 사자가 메고 있는 법고는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약사전, 그리고 석탑에 대한 여러 말씀과 여러가지 분석들은 .많은생각을 갖게 한다.

관룡사 앞마당에 서니 불현듯 옛날 사진에 오버랩되어 많은 얼굴들이 생각 난다.

79년 봄.. 11대 신입회원들과 화왕산 등산을 마치고 하산길에 관룡사로 내려와 대웅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었다..그 때는 대웅전 앞마당 꽤 넓었었는데.

혼자 마당을 거닐며 옛 생각에 잠시 젖어 본다.

그 옛날 그 친구들,선배님들 그리고 11대후배님들 ..

관룡사 어귀에 서있는 할아버지 장승의 주걱턱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다음 행선지로 

 

창영 읍내 하병수(억새로 지붕을 이은 초가 3간 전통 초갓집) 가옥으로 가는 길에

불국사 석가탑 같은 통일 신라시대 탑-국보 34호-을 보며 탑의 구성 및 방향..대웅전의 위치 및..대문의 자리 등 모든 사물의 자리 함은 이유와 합당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들으며..억새로 지붕을 이은 초가집을 향해서 모두 움직였다..

초가 삼간은 부엌 1칸은 요즈음 말로 service area 로 면적 에는 제외되며..어슬픈 선자 서가레 흉내가 일본의 건축구조물에 기친 영향,,추녀선의곡선 ..뒷 마당의 화계..등등 요번 여행의 가장 뜻 깊은 현장 탐구 였다..

사람이 그리운 촌노의 얼굴은 우리들의 작은 몸짓 하나가 집에 들은 손님을 대하듯 각종 먹거리와 마실 거리를 대접 하고파 하시는 마음 씀에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기에 충분 하였다..

아직 학업의 성취가 일천 한 관계로 탐방을 다녀 와도 학술적인 깊이를 정리 할 정도가 되지 못하여 주마간산 수박 겉?I기 식의 소회를 적을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게 생각 하며.. 하나 둘 학식과 경륜이 함께 하여 앞으로는 좀더 나은 탐방기를 쓸 수 있도록 노력 하리라 생각 한다..

200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