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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여행기

인도~파키스탄 1


카라코람하이웨이(Karakoram Highway)를 따라서



카라코람 하이웨이(KKH)는 카라코람 산악 지역을 통과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국경, 가장 위험한 지역, 해발고도가 해발 4,693미터에 이르는 쿤자랍 고개(Khunjerab Pass)를 넘어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한다.


중국 신장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카스가르[喀什米爾 Kashgar]와 파키스탄의 아보트아바드(Abbottabad)를 잇는 약 1,200Km의 왕복 2차선 도로로 힌두쿠시 산맥, 곤륜산맥, 카라코람 산맥을 지나며 파키스탄과 중국의 공동사업으로 약 20(1966~1982)에 걸쳐 건설 된, 중국과 파키스탄의 주요한 국경 교역도로로 중국에서는 카라쿤룬궁루[喀喇崑崙公路]라고도 한다.

이 길을 따라 중국에서 페르시아로 향하는 실크로드의 옛길이 아직도 고스라히 남아있는 카라코람 산맥의 산 언덕에는 지금도 우기에 산사태와 낙석 등이 끊임없이 발생, 이 길을 오가는 여행자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많은 빙하수로 인한 도로침수 등으로 통행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특히 7,8월 몬순기간에는 많은 비로 인한 낙석으로 몇 시간 혹은 하루 이상도 길이 막히기도 한다. 이번 봄(4월 초)에 베샴(Besam)에서 길기트(Gilgit)로 가는 도중 베샴 부근에서 발생한 낙석으로 10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기다리기도 했었다.


특히 고도가 높은 지대인 쿤자랍고개(해발 4,693m) 5월에 통행을 시작해서 10월 말에는 눈으로 인한 결빙으로 통행을 할 수 없다.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여행자의 발길이 많지않은 곳으로 옛 실크로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유여행자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문득 이곳의 중심지 훈자(HUNZA)에 가고 싶어졌다.

이곳을 가는 길은 중국의 우르무치를 거쳐 카쉬가르, 카스쿠얼칸에서 출입국심사를 한 후 쿤자랍 패스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는 루트와 이와는 반대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람아바드로 들어가서 길기트를 거쳐 훈자, 파수, 소스트를 거쳐 쿤자랍패스로 향하는 루트가 있다.

우리의 루트는 항공으로 인도의 델리를 거쳐, 달라이라마의 망명지인 다람살라의 맥레오드 간즈를 거쳐 시크교도의 본산인 암리차르를 들러 보고 인도, 파키스탄 국경인 나가(NAGA)에서 양국 국기 하기식 행사를 보고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여 파키스탄 국경도시인 라호르로 입국하기로 하였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 살구꽃이 만개할 시기에 맞추어 3월 하순 한국을 떠나 도착한 인도의 델리는 벌써 여름이 성큼 와 있었다.

나로서는 세번째 방문인 델리는 우선 시내를 활보하던 소떼가 보이지 않았다. 시내를 배회하던 소떼를 시 외곽으로 소개 시켰던 것이다. 소떼가 없어서 인지 거리는 조금 깨끗해진 것 같다. 늦은 밤 공항에 내려 뉴델리역 앞 파하르간즈 Main Bazar의 숙소로 이동, 사흘간 묵을 게스트하우스에 배낭을 풀고 열시간이 넘는 비행에 지친 몸을 쉬었다.





Main Bazar는 각국에서 온 배낭 여행자로 항상 번잡하고, 가장 인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행중 인도가 초행인 사람들은 델리시내 투어와 서너시간 걸리는 아고라의 타지마할을 보러 떠나고 나는 한가하게 Main Bazar를 둘러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항상 인도의 거리를 생각하면 머리가 혼란할 정도의 자동차경적, 거리의 먼지,귓전을 때리는 소음, 걸을 때 땅을 보고 걷지 않으면 오물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상황들. . 아수라장을 떠올린다.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은 인도의 이러한 삶에 아주 혐오 하는 부류와 이곳을 사랑하게 되는 부류로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고 한다.


귀국해서 지나다 보면 문득 이곳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틀간 델리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맥간으로 가는 야간버스를 타러 시 외곽지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우리나라처럼 터미널이 있어서 티켓을 사서 타는게 아니라 시내에 있는 여행사나 티켓판매소에서 승차권을 사서 릭샤와 셔틀버스를 타고 시외곽의 정류장으로 가서 목적지에 맞는 버스를 타는 시스템인데. . 선착순이 아니라 지정좌석제로 운영된다. 넓은 인도를 달리는 장거리, 장시간시외버스이다 보니까 좌석을 지정하지 않으면 여행 하기 힘들다.


 


밤 여덟시에 출발한 버스는 두세군데 휴게소를 거처 아침 여섯시 맥레오드 간즈 버스터미널에 무사히 도착 했다.

맥레오드간즈는 1951년 모택동에 의해 중국에 강제 병합된 티벳법왕인 달라이라마가 1959년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탈출 하여 인도 네루총리의 도움으로 망명정부를 세운 곳이다.

그 후로 많은 티벳인들이 중국의 박해를 피해 이 곳으로 모여 들어 티벳불교의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며 티벳 독립을 염원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불교신자들도 이곳을 찾아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기도 한다.


맥레오드간즈, 혹은 맥간이라고 불리워지는 이 곳을 즐기는 방법은 해발2,975m의 트리운드 트레킹(정상에는 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기도 한다), 박수나트 폭포, 그리고 각종요가 및 명상프로그램, 달라이라마의 티벳불교사원인 남걀사원참배등이 있으며, 티벳 불교에 심취한 많은 서양인들이 찾아 오고 있다.

맥간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거나, 혹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도 있다. 매콤한 비빔국수나 된장찌개등 인도커리에 지친 입맛을 되살려준다.

맥간에서의 명상프로그램에 참가 하고자 했으나 통상 일주일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고 무료로 하루에 한시간씩 하는 곳도 있으나 이틀 여정으로는 시간을 맞추어 참가 할 수가 없어 천천히 맥간과 다람콧 시내를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맥간에서 펀잡주의 암리차르까지는 여섯시간이 걸린 듯 하다. 도로상황이 변수가 많아 도시간 이동시에는 여유시간을 가지고 간다.




시크교도의 본산인 암리차르는 황금사원이 있는 곳으로 전세계 2,500만 시크교도들의 성지이며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틀간 조용한 산골마을인 맥간에서 지내다 번잡한 도시로 내려 오니 온갖 소음과 탁한 공기로 정신이 혼미하다.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라호르와 대치하는 교통·군사상의 요지이다. 1577년 시크교의 제4대 교주 람다스가 시크교 신앙의 중심지로서 암리타사라스(불멸의 연못) 주변에 건설하였으며, 시의 명칭은 여기서 비롯된다. 연못의 중심에는 황금빛을 발산하는 황금사원(GOLDEN TEMPLE)을 건립하였으며, 이것이 시크교의 총본산이다.


시크교는 힌두교의 최고신에 대하여 열렬한 신앙(바크티=信愛)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이 융합되어 탄생 했으며, 특징은 ‘다섯 개의 케이(Five Ks)’, 즉 케쉬(Kesh, 깎지 않은 머리카락과 수염), 캉가(Kangha, 나무 빗), 키르판(Kirpan, 단검), 카라(Kara, 쇠팔찌), 카체라(Kachera 또는 Kacchera, 속바지) 등을 항상 몸에 지닐 것을 장려한다.


이 다섯 개의 케이는 시크교도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도 담고 있다.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것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이 긴 머리카락을 캉가라고 불리는 작은 나무 빗으로 헝클어지지 않도록 하루에 두 번씩 빗질한다. 이것은 신체적 청결과 함께 정돈되고 질서 잡힌 삶을 유지해야 함을 뜻한다. 키르판이라 불리는 단검은 용기와 약자에 대한 보호를, 쇠팔찌 카라는 무한함과 그들이 신에게 영원히 귀속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속바지 형태의 카체라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착용한 사람에게 겸손과 정결함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크교 [Sikhism, ─] (두산백과)

 

황금사원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숙소를 정하고 복잡한 시장 길을 걸어 황금사원으로 가보니 관광객과 시크교인들로 인산인해다. 대낮의 황금사원의 풍광보다 밤이 좋다고 하여 시내로 나가 식사를 했다. 유명브랜드 프랜차이즈를 찾아 햄버거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해가 지고 난 후 황금사원으로 갔다. 마침 보름달이 휘엉청 떠오른 불멸의 연못에 비치는 황금사원은 성스러움을 가득 품고 있다. 신발을 맡기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사원안을 거닐어 본다. 구루가 축복을 주는 황금사원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녁시간인데도 약 두시간을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한다.

두시간여를 앞뒤 사람과 밀착하여 쓸려가듯이 들어간 구루의 설법 법당은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원하는 바를 이야기 하며 기부하는 현금을 빗질로 쓸어 담는 광경을 보게 된다. 종교는 현세의 부족함을 미래에 채워준다는 믿음, 자신을 위함에서 시작되는가?. . .





황금사원을 나와 출구로 나오는 길, 밤 열시가 넘은 시간 사원곳곳에 가족단위로 누워 잠을 청하는 교인들의 모습들이 생경스럽다.



이곳 암리차르골든사원에서 5분거리의 Jallianwala Bagh에는 우리나라의 기미년(1919) 삼일 운동처럼 인도인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금사원 근처에 있는 이 공원은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19 4 13일 영국의집회 금지법에 반대하는 인도인 1만여 명이 잘리안왈라 박에서 평화 시위를 벌였다. 당시 150명의 군인을 이끌고 온 영국군은 이 곳의 모든 출입구를 막고 시위대를 향해 총탄을 난사, 10여분 동안 시위에 참여한 민간인 중 수백명 이상이 사망하고, 천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당시 총에 맞은 사람보다 피할 곳이 없어 밟혀 죽은 이들이 더 많았는데, 총탄을 피해 뛰어든 우물에서만 12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인도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항거의 뜻으로 영국에게서 받은 기사 작위를 반납했고, 영국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마하트마 간디 또한 이 사건 이후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오늘은 인도를 떠나 파키스탄으로 가는 날이다.

오전 9시 국경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8시경 준비 된 승합차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뜨거운 아침 햇살을 뒤로 하고 암리차르에서 삽십분여의 거리에 있는 나가 국경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라 국경 근무자들은 아직 출근 전이라서 국경 초소 앞 간이매점에서 가지고 있는 이도 루피를 다 사용 하기 위해 음료수와 과자등 간식을 샀다.

9시경 국경 초소 근무자의 신호에 따라 출입국 심사대로 이동.. 걸어서 5분여 거리의 출입국 사무소는 터번을 두른 인도인들이 소액의 돈을 받고 손수레에 짐을 나누어 싣고 검색 장소 까지 이동 시켜 주며, 간단한 출국심사 뒤에는 국경선까지 버스로 이동 시켜주었다.


 


인도, 파키스탄의 국경은 국기 강하식의 퍼포먼스가 매일 양국의 국기 하기 시간에 맞추어 진행 하는 곳으로 걸어서 국경을 넘어서면 파키스탄 출입국사무소가 나온다. 파키스탄 이민국 사람들은 인도인보다는 친절 하다.


양국간 시차가 30분으로 인도 출국심사 후 파키스탄 입국심사대는 OPEN전이었다. 파키스탄 입국심사 후 버스정류장에 잠시 대기 하고 있으니 코끼리차로 버스터미널로 이동파키스탄의 첫인상은 인도와 다르게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이다. 인도의 거리는 온각 생활쓰레기와 동물들의 배설물로 항상 길바닥을 보며 걸었는데 파키스탄의 거리는 쓰레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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